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문단 편집) == 설명 == 파로스섬에 만든 등대라서 '파로스의 등대'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이 등대가 워낙 유명해지다보니 '파로스'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등대를 의미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오늘날 그리스어로는 이 등대 자체를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라고만 부른다. 라틴어로도 파로스(Pharos) 또는 파루스(Pharus)는 파로스섬이나 파로스섬의 등대를 가리키면서 또한 전의되어 그냥 '등대'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유럽 지역의 여러 언어에서도 '파로스'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가 등대를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자리잡았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섬과 헵타스타디온(Heptastadion)이라고 불리던 1 km 남짓한 제방으로 연결되었는데[* 그리스어로 헵타스타디온(Heptastadion)이란 '7스타디온'이란 뜻이다. 스타디온은 그리스 문화권에서 쓰이던 길이 단위인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꽤 크다. 일단 1스타디온을 약 185 m로 보면, 7스타디온은 대충 1.2 km가 된다.] 이곳의 동쪽 끝에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이집트 해안선은 매우 단조로워서 항구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파로스의 등대는 항해의 편의를 위해 건설했을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장군이자 [[헬레니즘 제국|헬레니즘-이집트]]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첫 번째 통치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가 건축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하여 자신을 소테르(구원자라는 뜻)로 칭하고 알렉산드리아 항구 부근의 조그만 파로스섬에 등대를 건축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등대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대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정확한 완공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1세기 그리스 역사가 스트라본(Strabon)에 따르면, 기원전 280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치세하던 시절에 크니도스(Knidos)[* 오늘날 [[터키]] 남서부 물라(Muğla)주 닷차(Datça) 반도의 끝에 있는 옛 그리스 도시이다.]의 소스트라토스(Sostratos)라는 그리스인 건축가가 완공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고대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었다고 하나, 해당 불가사의를 맨 처음 선정한 안티파트로스는 알렉산드리아에 살다보니 매일 보는 이 등대가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이게 아니라 [[바빌론의 문|바빌론 성벽]]을 선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문헌상으로 바빌론 성벽 대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후 6세기, [[로마]]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그레고리우스 투로넨시스]]가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정리하면서 [[안티파트로스]]의 글귀에서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넣고 [[바빌론]]의 성벽을 빼버린 것이 최초이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전차들이 그 위에서 경주를 할 법한 [[바빌론의 문|난공불락의 바빌론 성벽]]과, 알페우스 강변의 [[제우스 상|제우스]]를 목도하였다. [[바빌론의 공중정원|공중정원]]과, [[로도스의 거상|태양의 거상]]과, 장대한 인공산이라 할 만한 높다란 [[기자의 대피라미드|피라미드]]와, 광대한 [[마우솔로스 영묘|마우솔로스의 묘]]를 보았다. 그러나 내가 구름에 닿을 만큼 우뚝 서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전당]]을 보았을 때 이 모두가 그 그늘에 가려졌으므로 말하노니, 태양신 헬리오스마저 [[올림푸스]] 밖에서 그와 견줄 만한 것은 보지 못했으리라. >---- >그리스 사화집(Greek Anthology) IX.58, 영어에서 중역.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